2006년 03월 23일
<브이 포 벤데타>를 보고
이 영화를 볼대 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사 한 줄 읽어보지 못한 채 이 영화를 보게 됐다. 브이의 희극적 등장에는 이 영화가 코미디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 빠져 들어갔고 감독이 주려고 하는 메시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말미에는 잘 다듬어진 논리학 책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사회주의 이론, 혹은 혁명 이론 그리고 현대의 모든 모멘텀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비와 브이의 만남
여기서 이비는 부모가 전부에 의해 살해되는 어린시절을 경험하고 비판의식과 정의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간직한 노동자 혹은 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반면에 마스크를 한 브이, 혹은 마스크 그 자체, 아니면 브이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크다. 그는 익명성의 상징이다. 감독은 어떤 사람도 브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다. 만약 감독이 브이의 마스크를 벗겨내고 애초에 씌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존재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면 이 영화는 테러리즘에 대한 색다른 해석 정도로 그에 적당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브이에게 마스크를 씌었고 브이는 갑자기 어떤 영웅이나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대중 그 자체가 되고 특수한 존재가 아니라 아무나가 된다. 마스크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가 행하는 어떤 사건도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대중의 이름으로 그 익명성으로 대중과 더불어 일반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사실 어떤 테러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감독은 브이에게 이이덴티티를 부여하지 않기 위하여 그에 대한 정말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브이는 그냥 대중이 된다.
여기서 이비와 브이의 만남이 절묘하다. 감독은 브이가 탄생하는 과정을 이비를 통해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비는 브이를 통해서 고통을 배우고 그리고 고통을 이기는 법을 배운다. 이비는 대중에게서 그것을 배운다고 해도 좋겠다. 삭발을 당하면서 이비는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투사로 거듭나게 된다.
영화의 뒷부분에 수많은 브이가 모이는 장면은 상징성으로 가득 차있다. 수많은 브이가 의사당 앞에 모인다. 경찰도 진압을 포기한다. 불꽃놀이가 승리를 축하한다. 전체주의와 공포주의에 대한 대중의 승리이다. 이장면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수 많은 브이들이 가면을 벗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익명성 뒤에 숨어있다가 가면을 벗고 당당히 하늘을 보는 모습은 이비가 삭발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완전히 결합하고 있다. 이비는 대중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자각한 개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브이는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더욱 발전하고 성장한 수많은 개인으로 태어난다. 브이는 이비고 대중이고 개인이다.
그 밖의 이야기들.
이성의 시대에 비이성이 격리되고 제거되는 과정.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동성애를 소재로 하여 잠시 보게 된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격리되고 버림받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고뇌가 그려진다. 감독의 고민은 실제 남들과 다른 이들이지만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른 것을 밝히는 용기를 가졌으므로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인간,
정부로부터 살해되는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는 이비가 익명성 뒤에 숨는 것, 약한 개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투사로 성장하는 과정, 브이가 익명성을 버리고 마스크를 벗는 과정은 하나의 잘 다듬어진 듀엣연주이다. 결국 모두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의 공간은 어디였을까?
대부분의 예술 영화나 철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영화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대중들이 외면하는 영화이다. 이런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는 대중들에게 향해져 있지만 대중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사그라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마리 토끼를 거의 잡은 듯이 보인다. 대중이 열광하는 요소는 영웅주의와 낭만주의의 적절한 혼합물 인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적어도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약간의 암호화를 통해서 적어도 겉으로는 적어도 적당한 재미를 섞어놓는데 성공한 것 같다. 역시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전체주의의 공포 대신에 자본주의의 교묘함을 표현하고 싶어했을 감독은 적어도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영화 속에 굉장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는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테러를 가지고 논하는 것은 영화를 잘못 본 것이다.
# by | 2006/03/23 00:26 | Dream | 트랙백(1) | 덧글(2)



